[07] 딜쿠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지하1층·지상2층/연면적 623.76㎡)
특징: 3·1만세운동을 서양에 알린 앨버트테일러가 1923~1942년까지 거주하였던 주택

물리적 보전: 가능
사업방식: 문화재등재
보전방식: 원형보전
물리적형태: 단일
소유형태: 민간

3.1 운동을 서방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의 주택

힌디어로 '기쁨, 이상향'을 뜻하는 딜쿠샤(Dilkusa)는 2층 규모의 서양식 벽돌건물로 미국출신의 광산·무역업자였던 앨버트 테일러(Albert W. Taylor, 1875~1948년)가 1923년부터 1942년까지 거주하였던 주택이다. 1919년 UPI 통신사는 광무제의 승하를 취재하기 위하여 앨버트 테일러를 특파원으로 임명하였고, 이후 기업가이자 특파원으로 활약하였다. 1919년 03월 01일 한국 민족대표 33명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앨버트 테일러는 동생을 통하여 문서를 도쿄로 반출하였고, 이를 도쿄 통신사망을 통하여 타전하면서 3.1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1919년에 일제가 저지른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고 조선 총독을 항의 방문 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앨버트 테일러는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사업의 배경

앨버트 테일러가 미국으로 추방된 이후 자유당 의원 조경규(趙瓊奎)가 딜쿠샤를 매입하였다. 그러나 1963년 조경규가 부정축재자로 지목되면서 딜쿠샤를 비롯한 조경규의 재산이 국가소유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관리소홀로 방치된 딜쿠샤에 일반인이 무단으로 입주하면서 20여 가구가 사는 다세대주택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후 서울시는 한국독립운동에 기여한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장소라는 역사적 가치와 근대 주택건축 양식이 잘 남아있는 딜쿠샤의 건축적 가치를 근거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였다.

사업의 내용

서울시는 2001년부터 딜쿠샤의 등록문화재 등재를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거주민의 무단점거 문제로 인하여 결국 다시 방치되고 말았다. 2012년, 수십 년 동안이나 계속된 거주민의 무단점거로 딜쿠샤의 관리·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종로구는 안전문제를 이유로 기존 양식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2015년, 건물 외관을 비롯하여 조사가 가능한 일부 내부공간에 대하여 실측도면을 작성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등 기록화 작업을 실시한 서울시는 이듬해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종로구 등과 업무협약을 맺어 무단 점유 상황을 해결하고, 딜쿠샤를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복원하는데 합의하였다.

2017년 딜쿠샤가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되었고, 거주민의 거처 마련과 이주 문제에 마찰이 있었지만 2018년 07월 모든 거주민이 이주를 마치면서 원형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딜쿠샤를 일제로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을 도운 외국인들을 조명하는 전시관으로 조성하여 2020년에 시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딜쿠샤

복원 전 딜쿠샤의 외부(좌) 및 내부공간(중)의 모습과 건축연도가 새겨진 주춧돌(우)


사업의 결과

2019년 3.1운동 100주기를 맞이하여 딜쿠샤 복원공사 현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한편,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앨버트 테일러 가족이 기증한 유물과 딜쿠샤의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라는 전시를 마련하여 딜쿠샤의 가치와 앨버트 테일러의 업적을 시민들에게 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