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상화 고택

위치: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 84 (면적: 205㎡)
특징: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상화가 말년(1939~1943)에 생활하였던 도시형 한옥

물리적 보전: 가능
사업방식: 기부채납
보전방식: 원형보전
물리적형태: 단일
소유형태: 민간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상화의 마지막 숨결이 머무는 곳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1921년 잡지 『백조(白潮)』를 통하여 문단에 등단한 이상화(李相和)는 이듬해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공부하였다. 시, 소설, 수필, 번역문학, 문학평론 등 다방면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그 가운데 시작(詩作)이 유명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시로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조선병(1926)」, 「겨울마음(1926)」, 「지구 흑점의 노래(1926)」, 「대구행진곡(1930)」, 「역천(1935)」, 「나는 해를 먹다(1935)」 등이 있다. ‘이상화 고택’은 그가 1943년 타계하기 전 4년간 머물었던 주택으로, 205㎡ 넓이의 부지에 마당, 안방, 마루, 건넌방, 사랑방 등이 있고 별도의 창고와 화장실을 갖춘 도시형 한옥이다.

사업의 배경

2001년 고택을 포함한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지역 신문매체인 대구MBC, 매일신문, 영남일보, 한겨레신문 등은 이상화 고택의 멸실 위기 상황을 연이어 보도하였다. 이후 뜻 있는 시민들이 고택을 지키기 위해 2002년 ‘이상화 고택 보존운동본부’를 조직하였다. 보존운동본부는 이상화 고택 보존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고택 보존을 위한 모금 운동 등 고택 보존을 위한 시민참여를 주도하였고, 시민들의 노력 끝에 2003년 대구광역시와 시공업체 간의 고택 기부채납 기본 협약이 체결되었다. 2005년 고택 및 인근 부지 필지가 대구시에 기부채납 되면서 보존운동본부는 해산하였다.

사업의 내용

2005년 ‘이상화 고택 보존운동본부’는 모금액 8,600만원과 이상화 시집 1,729권을 대구시에 기증하였다. 2006년 04월 대구시는 이상화 고택의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였고, 06월 고택의 보수공사를 위한 대구광역시 자문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듬해 05월 고택 노후부에 대한 보수공사를 착공하고, 같은 해 11월 완공하였다. 고택 수리가 끝난 후 전시내용을 채우기 위해 보존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부에 이상화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을 설치하였다.

이상화 고택

출처: 대구관광안내 홈페이지(https://tour.daegu.go.kr)
시구가 새겨진 고택 진입로(좌, 2009.07.촬영), 고택 전경과 내부모습(중), 이상화 시비(우, 2009.07.촬영)


사업의 결과

현재 이상화 고택은 대구의 문화관광 골목투어인 ‘근대문화골목’4) 코스에 속해 있다. 제2코스인 ‘근대로의 여행’ 코스는 ‘이상화 고택’을 비롯하여 ‘진골목’, ‘제일교회’, ‘화교협회’, ‘선교사주택’ 등 근대문화유산이 밀도 높게 집중해 있는 인기 코스로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 ‘이상화 고택’의 운영은 이상화의 생애와 유물 등을 전시하는 것 외에 ‘대구 문화재 야행’과 같은 지역의 문화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이상화 혹은 근대기를 주제로 하는 공연을 펼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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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골목투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은 골목투어 중에서도 가장 인기 많은 구간으로 동산선교사주택→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 고택/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뽕나무 골목→에코한방웰빙체험관→(구)제일교회→약령시한의약박물관→영남대로→종로→진골목→화교협회(소학교)이다.
5)대구문화재단에서 공연 ‘옛 골목은 살아있다’를 상설문화관광프로그램으로 운영하여 국악 공연 ‘봄의 염원’을 이상화 고택에서 연주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