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잘가, 동대문운동장

위치: 서울시 중구 을지로7가 143번지
특징: 훈련원과 하도감 등이 있었던 자리에 1925년 일본 왕세자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근대식 운동장으로 2007년 DDP건립을 위하여 철거

물리적 보전: 불가능
사업방식: 기록,전시
보전방식: 기록
물리적형태: 단지
소유형태: 공공

80여년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의 산실이었던 동대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은 조선시대 무관 선발과 무예 및 병법 훈련을 관장하던 훈련원(訓鍊院)과 하도감(下都監), 염초청(焰硝廳) 등이 있던 자리에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본 왕세자 히로히토(裕仁)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한 명목으로 지은 근대식 운동장이다.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한 이 운동장은 당시 도쿄의 고시엔경기장(甲子園競技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큰 규모로 25,000여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 고교야구가 인기를 얻고 월드컵 예선전 등을 치르면서 서울운동장은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하지만 1984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쓰일 잠실종합운동장이 완공되면서 서울운동장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한국 스포츠의 중심도 잠실운동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사업의 배경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의 시행으로 청계천 주변 노점상들이 이주해 오면서 동대문운동장은 스포츠 경기장으로서의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이후 동대문 일대를 세계 디자인‧패션 중심지로 조성한다는 정책 기조가 만들어졌고 경기장의 기능을 상실한 동대문운동장의 철거가 결정되었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복합문화시설 DDP가 그 자리에 문을 열었던 2014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잘 가, 동대문운동장’이라 주제의 특별전시가 열렸다. ‘잘 가, 동대문운동장’은 한때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풍경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는 동대문운동장과 안녕을 고할 기회를 갖고자 마련된 전시였다.

사업의 내용

‘잘 가, 동대문운동장’은 크게 ‘동대문운동장의 시간’과 ‘동대문운동장과 사람들’로 구성된 전시 프로그램과 동대문 운동장 철거에 대한 서울시민의 감회와 앞으로의 다짐을 공유할 수 있는 참여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전시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관람객의 의견을 적을 수 있는 메시지 월(message wall)을 설치하여 일상의 기억, 지난 시대의 삶의 흔적을 간직한 채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게 서울시민들이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잘 가, 동대문운동장’의 연계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시기간 중 ‘스포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등과 같은 특별강연을 마련하여 전시 프로그램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이해를 돕기도 하였다.

잘가, 동대문운동장
출처: http://www.museum.seoul.kr
전시 포스터(좌)와 전시프로그램(중), 관람객의 의견을 담은 메시지 월(우)


사업의 결과

동대문운동장을 허물던 당시, 시민들은 철거 자체의 찬반에 집중하여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을 묵묵히 담아온 동대문운동장의 긴 역사를 차분히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도시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시간의 흔적을 품고도 필연적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 노장(老將)의 역사를 기리고 보내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잘 가, 동대문운동장’ 전시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인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잘 가, 동대문운동장’을 위하여 수집하였던 경성운동장 사진엽서, 동대문운동장 간판과 관람석 의자 등 관련 자료는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가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