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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요
인구개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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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구개괄
출처 : 서울시, 서울통계-서울통계-통계자료-주제별-인구-인구추이-주민등록인구
1.1.1 인구 증감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서울의 인구는 약 2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통계연보 상에 인구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1915년으로 이때 서울의 인구는 약 24만 명으로 기록되었다. 20세기 초반 일제 식민통치 아래 서울의 인구는 1935년까지 매년 3~6% 내·외의 완만한 증가를 보였다. 1936년에는 전년 대비 79.9% 증가하여 약 73만 명으로 늘었는데 이는 행정구역 확장 때문이었다.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일제 강점기 동안 군수산업정책에 따른 공업화로 인구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1942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1945년 해방 전까지 서울인구는 다소 감소하였지만, 1945년 광복과 함께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에는 서울인구는 전년 대비 약 40% 증가하여 36만여 명이 늘어났다. 광복 후 4년간의 서울시 인구증가 중 50% 이상이 일본이나 중국, 대만 등 해외 이주민의 귀국 및 북한 주민의 남하에 따른 것이며, 나머지 50%는 자연증가와 남한 내 농촌인구의 서울 유입에 의한 것이었다.
1950 년 약 170만 명까지 증가하였던 서울인구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 감소하였다. 1951년에는 100만여 명의 인구가 감소하여 64.8만여 명 수준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맺어진 1953년에 서울인구는 100만 명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59 년에 200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제대한 군인과 일자리를 찾는 농민들이 서울로 들어온 데 따른 결과이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은 1965년을 제외하고 매년 14~60만 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를 경험하였다. 이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근대화, 산업화 정책의 결과로 많은 농촌 인구가 서울로 유입되었고, 여기에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인한 자연증가가 더해진 결과이다.
이에 따라 서울인구는 1953년 100만 명에서 6년 후인 1959년에 200만 명을 넘어섰으며, 다시 4 년 후인 1963년에 300 만 명, 5년 후인 1968 년에 400만 명, 그리고 1970년에 500만 명을 넘어섰다. 1970년대에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어, 서울인구는 1972년에 600 만 명을 돌파하였고, 4년 후인 1976년에 700 만 명, 3년 후인 1979년에는 8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서울의 인구 증가는 행정구역 확대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한 해 또는 두 해 만에 분당 또는 일산 등 신도시의 인구만큼 늘어나는, 세계 도시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로 폭발적인 증가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서울은 강남지역의 개발과 함께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였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2~4%정도로 완화되었으나 인구규모를 감안할 때 약 4~5년마다 인구가 100만 명씩 늘어나는 급속한 증가라고 볼 수 있다. 1979년 800만 명을 넘어섰던 서울인구는 4년 후인 1983년에 9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5년 후인 1988년에 서울인구는 드디어 1,000만 명을 돌파하였다. 이는 인구 100만 명의 1953년 이후 15년 만에 서울인구가 10배 증가한 것이다. 이로써 서울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인구 1,000만 시대에 접어들었고, 세계에서 인구규모가 가장 큰 거대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인구증가 추이는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둔화되었으며, 1992년 1,097만 명으로 최고치에 도달한 이후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주로 일산, 분당, 산본, 평촌, 중동 등 신도시 개발에 따른 교외화 현상 때문이며, 1995 년에는 약 20만명이 감소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 서울인구는 2003년까지 감소하다가 다시 소폭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내국인 수는 크게 변동이 없는 반면, 국제결혼 이민자 수의 증가, 외국노동력, 방문취업자격자 등의 유입으로 인하여 외국인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장기체류 외국인은 2000년을 기준으로 볼 때 10년 동안 4배 이상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0년 말 현재 서울인구는 1,058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지난 20세기 동안 급속하게 증가했던 서울인구는 거의 100년 만에 안정단계에 들어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1.2 남녀 성비
표 1.1-1 에 연도별 남성 및 여성의 인구 수가 수록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의 인구 수의 차이가 현격했던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초반이 1930년대까지는 남성인구가 여성인구보다 많았고, 1930 년대 초반부터 해방이 된 1945년까지는 여성인구가 많다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까지는 다시 남성인구가 더 많았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대체로 여성인구가 많았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남성인구가 여성인구보다 많은 남초 현상을 보였다.
1930년대 이후 해방되기까지 여초현상(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현상)을 보인 것은 일본 식민통치가 강화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많은 남성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이주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해방 이후부터 1950년까지 남성인구가 다시 늘어난 것은 일본, 중국, 대만 등의 해외로 이주하였던 남자들이 대거 귀국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해 많은 남성이 참전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많은 남성들이 전쟁에서 전사하여 여초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195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1960~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초반까지도 여전히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보다 많은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근대화, 산업화라는 사회변화와 관계가 있었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근대화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던 산업은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인데, 많은 농촌여성이 제조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서울을 비롯한 도시지역으로 진입하였다. 1983년부터 2002년까지는 여성인구 증가가 둔화되면서 다시 남초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3년 이후부터는 출생 성비는 안정된 반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긴 평균 수명을 가진, 고령 여성이 증가하면서 여초 현상을 나타냈다.
1960년 이전까지 서울인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사회변동 속에서 남초 또는 여초 현상이 두드러지는 인구 구성의 불균형 상태를 경험하였다. 예컨대, 1930년 이전 남자가 많던 시기의 성비는 106~110 수준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불균형은 한국전쟁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1960년부터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최근 성비는 1980년 99.4, 1990년 100.8, 2000년 100.4 , 2010년 98.1 로 남녀 인구가 큰 차이 없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1.1.3 연령별 인구구성
정부와 서울시의 공식적인 통계는 1955년부터 연령별로 구분된 인구 구성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 연령별 인구구성은 유년인구(만 14세 이하), 청장년 인구(만 15세부터 64세), 노년인구(만 65세 이상)로 나누어진다. 단, 1965년 이전의 노년인구는 당시 관념상의 노인 기준인 60세 이상 인구로 구분하였고, 주로 내국인 자료를 기준으로 설명하였다.
1955년부터 현재시점까지 연령별 인구 구성 특징을 살펴보면, 유년인구의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청장년인구의 비율은 1990년대 후반부터 증가율이 둔화되어 절대규모가 감소하다 2005년 이후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년인구는 평균수명 연장과 사망률 감소로 전 기간에 절대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내국인 기준으로 볼 때 14세 이하 유년인구의 구성비는 1955년 38.6%에서 2010년 13.9%로 절반 이하 수준으로 줄었는데, 이는 출산율의 감소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청장년인구의 구성비는 1955년 57.7%에서 2010년 76.4%로 1.3배 증가하였다. 1960~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주로 도시화 및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 젊은 노동인력의 서울 전입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증가세를 유지하던 청장년인구의 절대규모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청장년층의 구성비가 계속 증가한 것은 이 연령대의 절대인구 증가보다 유년인구의 감소에 따른 상대적인 효과로 볼 수 있다. 실제 평균 20% 내외의 청장년층 절대인구의 증가를 보인 1980~1985년에 비해, 1990~1995년에는 증가율이 3%에 불과하였고, 1995~2000년 기간에는 절대인구가 오히려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2005~2010년 기간의 청장년층 인구는 증가하였다.
노년인구 구성비는 1960~1970년대에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노인인구는 1955년 전체 인구의 3.6%에서 1970년 전체인구의 1.8%로 감소하였다. 이는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조사에서 노년인구의 기준을 달리하여 나타난 차이로 1965년까지는 60세를 기준으로 한 반면, 1970년 이후부터는 65세 이상으로 변경하여 노년인구에 해당하는 대상의 범위를 축소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1960~1970년대 청장년층의 서울 유입으로 인해 노년인구의 상대적인 비율이 감소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노년인구는 1970년대 후반부터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2000년 5.4%에 불과하던 노년인구가 2005년 7.2%로 증가함으로써 서울시는 고령화 사회(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로 진입하였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2010년 현재 노년인구는 전체 인구의 9.7%를 차지한다.
출처 : 1955~1990년 자료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주제별 통계-인구·가구-인구총조사-인구부분-총조사인구 총괄(시도/성/5세연령별)
1995~2010년 내국인 자료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주제별 통계-인구·가구- 주민등록인구 통계- 동읍별/5세별 주민등록인구
2000~2010년 내국인+외국인 자료 : 서울시, 서울통계연보 (인구-연령별(5세계급)별 및 성별 인구)
1.1.4 부양비
이러한 추세에 따라 지난 60년간 부양비(청장년 인구가 부양해야 하는 유년인구 및 노년인구의 비율: [유년인구 + 노년인구]/청장년인구×100)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청장년인구의 절대 규모는 다소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년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절대규모가 크지 않은 노년인구의 증가로 부양비는 늘어나지 않았다. 1955년 청장년 100명이 노인 73.2명을 부양해야 했던 것에 비해, 2010년에는 노인 30.9명을 부양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체적인 부양 부담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년인구에 대한 부양부담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노년인구를 65세 이상이라고 명명한 시점인 1970년 자료와 비교 시, 청장년 100명이 2.9명의 노인만 부양하면 되는 1970년에 비해, 2010년에는 12.7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이후에도 노년인구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이로 인해 생산가능 인구인 청장년의 부양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서울이지만, 2010년 노년인구가 전체 인구의 9.7%인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까지는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구조를 가진 도시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