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소비 생활

2.3 일상소비 생활

 

대중교통 요금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입니다.

출처 : *2.3에서 소개되는 개별 자료와 동일

 

 

대중교통요금 종합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요금은 점차 증가하는 추이이다. 1970년 초반까지는 택시요금이 버스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1970년대 말 급격히 증가하여 1980년 기준으로 버스 및 지하철 요금은 90원인데 비해 택시기본요금 500원으로 약 5.6 배가 차이가 났다.

버스 및 지하철 요금은 택시 기본요금에 비해 완만하게 증가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증가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났다. 특히 1980년 중반까지는 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같은 수준이었으나, 1980년 중반부터 지하철 요금이 더 높아졌다. 이는 당시에 지하철 3, 4호선 건설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자, 지하철 적자운영을 줄이기 위해 요금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좌석버스나 직행버스 등 다양한 버스 유형의 도입과 함께 버스요금이 다시 지하철 요금을 상회하고 있다.

 

지하철 요금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서울특별시, 통계로 본 서울 교통, 1998

        조선일보 관련기사

 

 

지하철 요금

서울에 지하철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때이며, 이 때 기본구간 요금은 30원이었다. 이후 지하철의 기본구간요금은 10~30원 단위로 지속적으로 인상되어 1981년에는 100원이되었으며, 1986년에는 200원이 되었다. 그 후 인상폭은 50원 단위로 이루어져 계속 인상되었으며, 1993년 300원, 1995년 400원, 1999년 500원으로 책정되었다. 500원이던 요금은 1년만인 2000년 100원이 인상되었다.

지하철의 요금체계는 처음 기본 구간 요금을 결정하고 초과구간에 대해서는 일정수준의 요금을 추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적용되다가 1985년부터 구역제로 바뀌어 기본구간은 1구간으로 하고, 1구간을 넘어서는 외곽지역은 2구간으로 하여 총 2개 구간으로 구분하여 요금이 책정되고 있다. 1986년 이후 2구간의 요금은 1구간의 요금에 100원을 추가하고 있으며, 2000년 현재 기본구간인 1구간 요금이 600이며, 초과구간인 2구간 요금은 700원이다.

지하철 수준의 개선과 부채상환을 목적으로 지하철 요금은 꾸준히 인상되었다. 지하철 요금은 특히 1980년 중반에서 1990년 중반까지 버스요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인상되었는데, 이는 이 시기에 지하철 3, 4호선의 건설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요금은 운영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으로서, 1990년의 경우 1인당 평균운임은 운영원가의 56%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내버스 요금

원단위로 통일된 1965년 이후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시내버스 요금은 1965년 8원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00년 현재 600원으로 75배 증가하였다. 1970년대에는 버스 요금이 15원~80원으로서 100원 미만이었으며, 1980년대에도 200원 미만의 수준을 유지하였다. 버스요금이 200원을 넘어선 것은 1992년 이후 이며 이후 200원대, 300원대, 400원대를 거쳐 1998년 500원에 이르렀고, 2000년에는 600원으로 인상되었다.

이 기간동안 버스요금의 지불방식도 여러 차례 변화하였다. 1977년 10월 요금인상과 함께 주화식 승차표(토큰)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994년 12월에는 선불카드인 버스카드 제도가 시범 운영되었으며, 이듬해인 7월부터는 버스카드 이용을 전체 노선으로 확대하였다. 최근에는 신용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을 추가하여 버스 및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을 신용카드로 지불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버스 요금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서울특별시, 통계로 본 서울 교통, 1998

        조선일보 기사

 

 

택시 기본요금

서울에 택시가 처음 소개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택시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택시요금 산정에 있어 기본구간이 2㎞가 된 것은 1949년 4월 1일 이후이다. 당시는 화폐개혁 전 이어서 현재의‘원’과는 다르지만 기본요금은 200원 이었다. 자료의 구득이 곤란하여 택시요금은 1972년부터 조사되었는데, 1972년 당시 기본요금은 90원 이었고, 그후 8번의 요금인상을 거쳐 1980년에는 500원이 되었다. 1982년에는 기본요금 600원에 심야시간에 할증제가 시행되었다. 1982년 1월 6일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심야시간대(00:00~04:00)의 운행이 요구되었고, 평상요금의 20% 를 할증하는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교통 혼잡이 심해지면서 택시운전사가 교통이 혼잡한 지역의 운행을 기피하게 되면서 1985년부터는 운행거리 뿐 아니라 운행시간에 따라서도 요금이 증가하는 시간거리 병산제가 도입되었다. 1988년에는 중형택시가 도입되면서, 택시요금이 분리되었다. 1989년 7월, 소형택시의 기본요금은 700원, 중형택시의 기본요금은 800원이 되었다. 1990년대에는 택시를 고급화하기 위하여 모범택시를 도입하고 중형택시의 요금도 꾸준히 인상되었다. 1994년 1,000원이던 기본요금은 1998년 1,300원으로 인상되었고, 2001년에는 1,600원으로 인상되었다.

 

택시 기본요금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한국물가정보, 물가총람, 1995

        서울시, 통계로 본 서울 교통, 1998

        조선일보 기사

 

 

공중전화 요금

공중전화 요금은 매우 완만한 변화를 보인다. 1970년 5원에서 시작하여 1977년 10원, 1982년 20원, 1994년 30원, 1995년 40원으로 올랐으며 다시 1998년 50원으로 올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는 1970년의 5원에 비해 10배 증가한 것이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이동전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공중전화의 이용률이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중전화기의 보급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공중전화 요금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1970~1994년의 자료: 한국물가정보, 물가총람, 1995

        1994~2001년의 자료: 한국통신 홈페이지

 

TV 시청 요금

TV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 초의 시청료는 100원이었다. 이는 4~5년마다 100원씩 증가하다가, 1980년 800원으로 올랐으며, 이듬해인 1981년 2,500원으로 전년대비 3배 이상 증가하였다. 1981년에 시청료가 대폭 인상된 것은 이 때부터 컬러 TV방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TV시청료는 2,500원 이후 동결되어 현재까지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TV 시청 요금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한국물가정보, 물가총람, 1995

 

 

쌀가격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인 쌀값의 변화는 시민생활의 안정에 주요한 요소이다. 쌀값의 실제 가격을 현재가격으로 환산한 자료에 의하면 1935년 쌀 80㎏이 당시 가격으로 17.8圓, 현재 가격으로 0.0178원이다. 해방 이후인 1945년에도 쌀값은 현재 가격으로 0.69원으로 저렴하였으나, 이듬해인 1946년 무려 459.6% 인상된 3.86원이었고, 한국전쟁 기간에 다시 크게 올라 500원대를 넘어섰다.

쌀값은 전쟁 직후 다소 내렸으나, 80kg을 기준으로 1955년 1천 원을 넘어섰다. 한국 전쟁 후 점차 안정되던 쌀값은 경제개발시기인 1960년대 초 다시 20~50%대로 상승하였다. 그리하여 1963년 3천원, 1972년 1만원을 넘었다. 쌀값의 인상폭은 이후 지속되어 2002년 현재 20만원을 넘고 있다. 이는 1945년 대비 29만배, 쌀값이 많이 오른 1952년에 비해서도 402배가 증가한 것이다.

쌀값 인상률이 가장 급격하게 나타난 것은 1980년 전후로 이 시기는 유가파동으로 대부분의 물가가 크게 상승하던 시기이다. 쌀값 인상률은 1986년 이후 한자리수의 인상률을 보이다가 1996~1999년 사이 다시 두 자리수로 크게 인상되었다. 그러나 최근인 2002년에는 전년도 대비 0.7%가 오히려 하락하였다.

 

80kg 기준 쌀가격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입니다.

출처 : 표 2.3-6과 같음

 

쌀 가격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한국은행, 한국은행 65년 물가총람

         통계청, 소비자물가연보 품목 및 품질규격집

 

 

연탄 가격

1980년대 초반까지 서민들의 주요 연료원이었던 연탄, 소형탄 가격은 1970년부터 자료를 구득하였다. 1970년 당시 연탄의 가정도 가격은 18원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20원~85원 수준으로서 100원을 넘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 연탄의 가정도 가격은 100원대로 상승하여 1988년 195원까지 인상되었다. 연탄, 소형탄 가격은1974년과 1980년 전후에 가장 많이 인상되었는데, 이 시기의 유류파동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석유가격이 크게 인상되면서 생산원가의 상승요인이 발생한 것과 동시에 비싼 석유 대신 무연탄에 대한 소비가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도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이후 연탄요금은 동결되었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석유나 가스 등이 무연탄을 대체하여 일반가정의 연료원으로 사용되면서 무연탄 생산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이다. 연탄, 소형탄 가격의 인상률은 공장도가, 도소매가, 가정도가가 대체로 유사한 패턴으로 변화하고 있으나, 대체로 공장도가의 인상률에 비해 실제 가정에서 구입하는 가격의 인상률이 낮아 가정에서 느끼는 체감 인상률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탄 가격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에너지경제연구원 홈페이지 

 

 

자장면 가격

중국음식점의 대표적인 메뉴인 자장면은 1960년대 이래 일반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외식 메뉴로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수준을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자장면 가격의 정확한 조사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정확한 통계자료로 조사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이다. 이전의 자장면 가격을 주요 신문들의 기사검색을 통해 조사한 결과는 표 2.3-8과 같다.

1963년 자장면 가격은 20~30원으로, 1965년 시내버스 요금이 8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5~3.7배 수준이다. 반면에 2000년 기준으로 자장면 값 3,000원은 시내버스 요금 600원의 5배이다. 1963~2000년기간동안 쌀값은 3,010원에서 202,532원으로 약 67배 증가한 데 비해, 같은 기간동안 자장면 값은 100~150배 인상되었다.

자장면 가격 인상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70년대 후반으로, 1976년 138원으로 1963년 대비 5~7배 인상되어 연평균 28%씩 증가하였다. 자장면 값은 1980년에 다시 350원으로 올라 1976년 가격의 2.5배로 인상되었는데, 이는 1976~1980년간 매년 약 38.4%씩 증가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자장면 값은 700원 정도 이었으며, 1990년 상반기까지 자장면 값은 매년 20% 내외씩 인상되어 1991년 들어 1,400원에 이르렀다. 1993년에는 2,000원을 넘어섰고, 1995년 2,500원 수준으로인상된 이후에는 가격변동이 거의 없이 매년 3%수준의 인상률만을 보이다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3,000원대로 인상되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1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가격이 내렸다가, 2002년에 다시 3,000원대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자장면 가격을 나타낸 표입니다.

 

 

 

 

 

개봉극장 관람 요금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상영은 1898년 미국인 이스트하우스가 남대문에서 상영한 것이었으며, 최초로 한국무성영화가 상영된 것은‘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1919년 상영된 것이었다. 1935년에는 최초의 우리말 발성영화는‘춘향전’이 상영되었고, 이듬해 1936년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상영되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라고 하는 1960년대 영화요금은 한국영화 55원, 외국영화 70원이었다. 영화요금은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초반사이에 가장 많이 올랐다. 1972년부터 1982년까지는 거의 매년 영화요금이 인상되었고, 인상폭이 가장 컸던 시기는 1979년으로 1978년 700원에서 1200원으로 71.4% 인상되었다. 이후 인상폭은 둔화되어 매 2~4년마다 500원씩 인상되었고, 1995년 6천원으로 인상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에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요금이 같아지기 전까지 외국영화 관람료가 한국영화에 비해 최소 1.1배(1965년)에서 최대 1.7배(1978년) 더 비쌌다. 한편 1973년부터는 영화요금에 문예진흥기금이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개봉극장 관람 요금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문화관광부, 통계로 보는 문화 산업, 2000

        디지털 조선일보 

 

 

담배가격

담배가격에 관한 자료는 여러 가지 출처를 통해 1949년 ‘화랑’ 담배부터 확인되었다. 화랑담배는 1950년대 이래 3원에 판매되었고, 1963년 5원으로 인상된 후 다시 1973년 10원으로 인상되어 1974년까지 판매되었다. 1955년부터 서민층의 담배로 많은 소비가 있었던 ‘파랑새’는 1962년부터 1968년까지 6원에 판매되어, 화랑’보다 1원이 비쌌다. ‘진달래’ 담배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57년으로서 당시 가격은 100환이었으며 1962년 화폐개혁에 따라 13원에 판매되었다. ‘파랑새’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진달래’보다 고급 담배로서 1958년 ‘아리랑’이 출시되었는데, 진달래 가격의 약 2배인 25원에 팔리다가 1967년 35원으로 인상된 후, 1973년까지 판매되었다. 1961년에 나온최고급 담배는 ‘파고다’였으며, ‘아리랑’ 보다도 2배 비싼 50원 가격에 판매되었고 1972년까지 출시되었다. ‘파고다’와 동일한 가격의 고급담배인 ‘신탄진’이 나온 것은 1965년이었으며 60원으로 가격이 인상되었다가 다시 50원으로 환원되어 1974년까지 판매되었다. ‘신탄진’과 ‘파고다’보다 고급담배로서 가격이 두 배에 이르는 ‘청자’는 1969년 100원에 출시되어 150원으로 인상되었다가 다시 200원까지 인상된 후 1978년까지 판매되었다. ‘청자’가 최고급 담배로서 자리매김 하던 1970년대 초반, 이보다 비싼 ‘태양’과 ‘거북선’이 1974년 200원 가격에 출시되었다. ‘태양’과 ‘거북선’은 1976년 300원으로 인상되었고, 각각 1978년과 1979년에 450원으로 인상되었다. 이즈음 1980년 450원의 가격으로서 또 다른 고급담배인 ‘솔’이 출시되었다. 1987년에는 600원짜리 ‘88 라이트’가 출시되어 최고급 담배의 자리를 대치하였다. ‘88 라이트’는 1994년 700원으로 인상되었는데, 이때 900원 짜리 ‘디스’가 출시됨으로서 최고급 담배의 위치가 갱신되었다. 그 이후 ‘88 라이트’는 2000년 1,000원까지 인상되었으며, ‘디스’는 이미 1996년 1,000원으로 인상된 후, 2000년 1,100원, 그리고 2001년에는 1,300원으로 인상되었다.

새로운 담배의 개발은 다양한 기호를 충족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점점 건강에 해가 적은 고급담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담배가 개발 판매될 때마다 담배가격이 100원에서 300원 정도 상승하였다. 반면에 같은 종류의 담배가격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이는 새로운 종류가 개발 판매되면서 이전의 종류는 곧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담배 값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시내버스, 자장면, 극장요금 등 다른 품목의 가격과 비교해 보았다. 1968년 당시 담배 값은 최고급품을 기준으로 60원이었던 반면, 시내버스 10원, 자장면 50원, 극장요금 130원이었다. 따라서 이 당시 담배 값은 자장면 한 그릇보다 비쌌고, 영화 한편을 보는 값의 약 절반 수준이다. 모든 품목의 가격이 상승한 2000년에는 담배 값은 1,100원, 시내버스 600원, 자장면 3,000원, 극장요금 6,000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동안 인상폭은 담배 값이 가장 낮아 1.8 배 증가한 반면, 시내버스와 자장면은 60배, 극장요금은 46배 증가하였다.

 

담배 가격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한국물가정보, 물가총람, 1995

        동아일보 기사자료 : 1993-12-31, 31면; 2000-12-30, 30면

 

 

각급 학교 수업료

각급 학교의 수업료는 계속 증가하였다. 1970년에 중학교의 1년간 수업료는 최고치를 기준으로 20,700원이었다. 이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1970년에 10만 원 선을 넘어섰으며, 1985년에 다시 20만원을 넘었다. 1995년 현재 약 50만원까지 올랐다. 이는 1970년 당시 수업료에 비해 24.2배 늘어난 것이다.

고등학교 수업료는 중학교보다 다소 높다. 1970년 27,320원으로 중학교 수업료의 1.3배에 이른다. 고등학교 수업료도 지속적으로 올랐다. 상승률은 중학교 수업료에 비해 더욱 높아, 중학교와 고등학교 수업료의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다. 1970~95년 사이 고등학교 수업료는 32.3배 늘어나 중학교 수업료가 24.2배 늘어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중학교 수업료와의 격차도 1970년 1.3배에서 1995년 1.8배로 늘어났다.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대학의 수업료이다. 특히 자연계 대학의 수업료가 각급 학교 가운데 가장 크게 올랐다. 인문계 대학의 수업료가 1970~95년 사이 56배 늘어난 것에 비해, 자연계는 62.2배 늘었다.

 

각급 학교 수업료를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한국물가정보, 물가총람, 1995

 

 

가전기기 보급

1960년대에 일반가정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가전기기는 라디오였다. 라디오는 1961년 36.4%의 가정에 보급된 데 그쳤으나 1969년 보급률 61.6%로 일반화되었으며, 1989년 보급률 96%로 거의 대부분 가정에 보급되었다. 이와 같이 라디오는 보급이 보편화되자 1990년 이후부터는 가정의 가전기기 보유에 대한 조사대상에서 제외되어 통계자료로 구득하기 어려워 졌다. 이는 라디오가 보편화된 가전제품이 된 것 이외에도 90년대 들어오면서 TV나 오디오, 컴퓨터 등의 보급으로 라디오의 이용도가 떨어지면서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주요한 가전기기로 간주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 인다.

라디오에 대한 관심의 감소는 텔레비전 보급과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TV방송이 시작된 것은 1966년도이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낮아서 텔레비전 보급률은 1960년대에 있어 미미한 수준으로 1969년에 15.7%에 불과하였으나, 80년대 들어 보급률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1985년 이미 흑백 및 컬러 TV를 포함한 총 보급률이 122%로 가구당 1.2대의 TV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1980년 컬러 방송을 시작한 이후 흑백 TV보급률은 감소한 반면, 컬러 TV는 매우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84년부터 흑백 TV의 수수료는 면제되었고, 1993년에 이르러 가구수의 2%만이 흑백 TV를 보유하는 정도로 컬러 TV로 대체되었다. 실제 모든 가전기기 가운데 보급률이 가장 빠르게 상승한 것은 컬러 TV이다. 컬러 TV 보급률 1980년은 3.6%에서 1987년 104%로 7년 사이에 모든 가정에 1대 이상의 컬러 TV를 갖게 되었다.

반면에 컴퓨터,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등은 1970년대까지 조사대상 품목에 포함되지도 않을 정도로 보편적인 가전기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1985년 이후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에어컨 및 컴퓨터의 보급률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에어컨은 1985~2000년 사이 보급률이 2%에서 52%로 26배 증가하였고, 컴퓨터는 1987년 5%에서 2000년 4%로 16.8배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 추세에도 불구하고 2002년 현재 에어컨의 보급률은 52%로서 약절반이 넘는 가구가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비해 컴퓨터는 보다 보편화되어 83%에 이르는 가구가 보유하고 있다.

에어컨과 컴퓨터 보급은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증가한 반면, 세탁기와 냉장고는 70년대부터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한 가전기기이다. 1985년 현재 세탁기는 57%, 냉장고는 98%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세탁기 보급률은 2000년 현재 98%로 거의 모든 가정에서 세탁기를 사용한다. 냉장고는 이미 1987년에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되었지만, 1990년 후반에는 김치냉장고가 개발, 보급되면서 2002년에는 보급률 144%, 즉 2가구 중 하나는 냉장고를 2대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가전기기 보급률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1961~1970년의 자료: 서울시, 서울통계연보

        1985~2002년의 자료: 한국전력거래소 수급계획처 수요예측팀

        컬러텔레비전의 1980, 1984, 1990, 1994년 자료: 한국방송공사 통계; 통계청, 통계로 본 서울의 변화, 1995년, 54쪽

 

전화시설 및 가입자를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서울시, 서울통계연보

        서울시, 도표로 본 서울시 주요 행정통계, 2001; 1994

        통계청 홈페이지

 

 

전화시설 및 가입자

우리나라에 전화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시기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였지만 일반가정에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부터이다. 그러나 전화는 정부고위층이나 부유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시설로서 1960년대 중반까지 일반가정의 전화가입률은 10%로 10가구에 한 가구 정도가 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전화가입률은 완만하게 증가하여 1978년 50%에 이르렀고, 1986년에는 가입률 100%를 달성하였다. 2000년 현재 가입률 150%로 가구당 평균 1.5대의 유선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전화 가입자수는 1980년대부터 10% 정도의 증가를 보이다가 1998년 이후 약간 감소한 후 현재는 정체상태이다. 이는 90년대 이후 이동전화 이용이 증가한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중전화 보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1999년 이후 감소하는데, 이 또한 이동전화의 영향인 듯하다. 한편 이동전화는 1990년대에 처음 소개된 이후 급속하게 보급률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구득하기 어려워 전국 통계를 통해 살펴보면, 1991년 보급률 0.2%로 인구 500명에 한 명밖에 이동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2000년에는 보급률 57%로 증가하여 서울시민 2명에 한명은 이동전화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 이는 모든 연령층을 모두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성인들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동전화 보급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가구당 전화가입자수를 나타낸 그래프 입니다.

출처 : *앞의 표와 같음

 

전국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를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통계청 홈페이지 

 

 

쇼핑 시설

일상생활과 관련된 물품의 구매장소로 1970년대 중반까지는 일반시장(재래시장)이 중심역할을 담당하였다. 신세계, 화신, 미도파, 신신 등 일부 백화점이 도심부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일반시장은 서울시민에게 일상쇼핑의 중심지였다. 시장의 수는 1960년 37개에서 1969년 100개를 초과(117개)하였고, 1973년에는 200개 초과(209) 해서, 1983년에는 438개소에 까지 이르렀다가 그 이후 약간의 감소를 보여 2001년 현재 393개의 일반시장이 분포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반 재래시장의 성장세가 멈춘데 반해, 1970년대 중반이후 백화점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백화점 수는 1980년대 초반 10개소를 넘어서서 1990년대에는 약 30개소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 강남, 목동, 상계 등 대단위 신시가지가 건설되고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소득수준이 향상된데 따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쇼핑센터도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표 2.3-15에서 1985~1989년 사이는 백화점과 쇼핑센터의 수는 자료미비로 두가지를 통합하여 나타내고 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는 대형편의점·할인점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시작하였다. 1990년 5개소였던 대형점은 2000년 21개소로 증가하여 재래시장이 가지고 있던 시장기능을 상당부분 흡수하고 있다.

 

쇼핑 시설을 나타낸 표입니다.

출처 : 서울시, 서울통계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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